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병렬의 두 얼굴

15 Jul 2026

Reading time ~2 minutes

실수가 쌓인 날

그런 날이 있다. 회의를 통으로 놓치고, 약속 시간을 잘못 알아 헐레벌떡 달려가고, 하루가 끝날 때 “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”는 느낌만 남는 날.

공통점이 있었다 — 머릿속에 병렬로 진행 중인 것들이 너무 많았다. 하나가 마무리되기 전에 다른 게 끼어들고, 또 다른 게 끼어들었다. 집중하려 해도 어딘가에 “아 그거 있었는데” 하는 잡념이 걸쳐있다. 일기에 남은 단어가 “挫败感(cuòbàigǎn) — 답답함”이었다.

처음에는 단순하게 결론을 냈다. 병렬이 너무 많아서.

그런데 다른 기억이 있었다.

같은 병렬, 다른 결과

약 5개월 전에도 일이 병렬로 쏟아진 날이 있었다. 시스템 여러 종을 동시에 들여다보면서, 하나를 점검하는 동안 클로드에게 다른 걸 넘기고, 돌아온 결과를 검토하는 사이 또 다른 작업을 던져놓는 식이었다.

그 날 일기에는 이렇게 적혔다: “확실히 클로드가 있으니 병렬로 작업하긴 좋다. 오랜만에 집중력 있게 보낸 하루였다.”

11시간짜리 날이었는데도.

병렬의 개수가 문제가 아니었다. 그 날은 실행이 분산됐고, 인지는 한 곳에 모였다. 오케스트레이터였지 연주자가 아니었다.

실행의 병렬과 주의의 병렬

두 날을 나란히 놓고 보면 구분선이 보인다.

실행의 병렬은 감당할 수 있다. 여러 일이 동시에 진행되더라도 실행 자체를 위임할 수 있을 때 — 주의는 하나의 흐름을 타고, 피로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.

주의의 병렬은 다르다. 회의·발표·강의·마감이 각각 인지 자원을 직접 요구할 때 — 어느 것도 충분히 처리되지 않는다. 결국 회의 하나가 통째로 빠진다. 문자 알림을 봤는데도. 캘린더에 적어뒀는데도.

조급함은 병렬의 개수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. 위임 불가능한 것들이 주의를 직접 끌어가기 시작할 때 시작됐다.

생각정원에 수렴된 문장이 하나 있다: “조급함의 해법은 병렬을 줄이는 게 아니라, ‘위임할 수 있는 병렬’과 ‘내 주의를 직접 쪼개는 병렬’을 가르는 것인가.” 결론이 아니라 열린 고리로 남겨둔 질문인데, 이 질문 자체가 꽤 쓸모가 있었다.

진단이 달라지면 처방도 달라진다

이 구분이 의식되면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. “할 게 너무 많다”는 막막함 대신 “이 중에 실행을 분리할 수 있는 게 뭔가”라는 질문이 가능해진다.

물론 모든 병렬이 위임 가능한 건 아니다. 판단이 필요한 것, 대면이 필요한 것, 내 이름을 걸어야 하는 것 — 대리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.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줄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.

다만 적어도 — “지금 힘든 게 병렬이 많아서가 아니라, 이 병렬들이 내 주의를 직접 먹고 있어서”라는 진단은 달라진다.

2022년에는 원인 미상의 정체감이었고, 2025년에는 마감 조급함이었고, 2026년의 그것은 ‘다 하려는 것 자체가 정체를 만드는’ 국면이다. 같은 이름의 다른 얼굴들이다. 공통점은 — 막막함의 정체를 가를수록 조금씩 다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것.


분류가 먼저다. 그다음에 처방이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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